사도행전 28장 22-28절 "22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23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24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묵상해 볼 점]

1. 오늘날에도 교단과 교파가 많은 것처럼, 위의 말씀이 기록될 당시에도 여러 교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고전1:11-13, 행5:27-41). 그들은 자신들이 각각 자신들의 "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바울과 다른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어느 하나의 "파"에 속한 사람들로 취급을 하였습니다(22절, 행5:28). 이로 인해서 바울이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여러 파들 중에 하나(그것도 어디서나 반대를 받는 파)가 주장하는 말로 취급되어서, 자신들에게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자기의 생각과 주장이 강하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에 둔하게 되고, 그 말씀에 오히려 눈을 감게 되는 것 같습니다(27절).

 

2. 그렇다면 정말로 바울을 포함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슨 "파"였을까요? 그리고 여러분은 현재 어느 교단과 교파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느 "파"에 속했다는 생각 자체가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꼭 "파"를 말해야 한다면 그들의 "파"는 오직 "예수님께 속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 속한 것"외에는 다른 말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직 예수님께만 속한 자들이었는데, 그럼 우리들은 어디에 소속된 사람들일까요? 오늘날의 수많은 교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운 초대 교회로부터 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우리들 역시 예수님께만 속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만 속한 것 외에 더하여 베드로나 바울, 아니면 칼빈(장로교 창시자)과 존 웨슬리(감리교 창시자) 등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속했다고 말을 한다면, 분명 이것은 그들 조차도 원치 않는 일일 것입니다. 아래의 말씀과 같이 그들은 우리에게 "왜 예수님께 속한것 외에 우리에게 속했다고 하느냐"고 오히려 우리를 책망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1-13절11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베드로)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13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그러므로 혹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느 교단과 교파에 속했느냐고 질문을 한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오직 "예수님께만 속했습니다(아2:16, 요15:18-19)"라고 대답하는 것이 올바른 성경적인 대답일 것입니다. 위의 바울의 말과 같이, 오직 예수님은 한 분뿐이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또한 예수님 한 분뿐이시기에, 우리에게서 예수님만 홀로 증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3. 당시에 분쟁이 있었던 고린도 교회와 같이,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서로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함께 대화를 나눌 때에 서로의 주장이 안 맞기가 쉽습니다(25절). 그런데 만일 서로의 주장이 엇갈리는 이유가, 한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말하고, 다른 사람은 자신이 속한 교리나 이론,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므로 맞지 않는 것이라면, 자기의 주장과 자존심으로 고집하기 보다는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지 함께 성경을 상고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행17:11-12).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그 모인 사람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로 예수님을 증거하였지만(23절; 이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글들이 모두 예수님을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 눅24:44-45, 요5:3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24절). 이처럼 누군가를 통해서 자신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전해질 때, 교파를 따지거나, 아니면 그의 말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 그가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된다면(24-25절), 자신의 생각 때문에 진리를 깨닫고 고침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주의해야 하겠습니다(28절).

 

로마서 2장 4-5절 "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5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의 마음은, 자신의 것을 고집하려는 마음보다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지 먼저 성경을 상고해 보려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언제, 누구를 통해서든지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전해질 때, 올바른 진리를 우리가 알아볼 수 있고, 그 말씀 앞에 겸손히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후1:18-20).

 

요한복음 1장 45-49절 "45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9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결단과 적용]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롬10:17), 우리로 하여금 참된 진리를 깨닫게 하사 “고침(돌이킴, 회개, 회복)"을 받게 해주시기 때문에(사6:9-10), 성경의 말씀을 읽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진정 우리에게 큰 복이 됩니다(왕상10:8).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복인지 아래의 말씀을 통해서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0-16절 "10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16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이 말씀 중에서 14절-16절의 말씀과 위의 사도행전 28장 26-27절의 말씀은 다같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신 것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고 하신 내용입니다. 이것이 큰 문제가 되는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받아야 고침을 받을 수(돌이킬 수) 있는데, 말씀을 듣기에 둔하고 말씀 앞에 눈을 감아 버리게 되면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예수님을 증거하였어도 서로 맞지 않아 흩어질 때에) 하나님의 구원이 그들에게서 떠나 이방인에게로 향하게 된 것을 전했습니다(28절).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고, 듣고, 깨닫게 해주실 때가 바로 우리에게는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라는 것을 생각하여, 항상 예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고자 해야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2절1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어느 교단과 교파에 속해 있다는 것과 자신이 알고 있는 이론과 생각을 중시하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할례 받은 귀"를 가져야 하는데(렘6:10-11, 행7:51), 할례란 육적 몸을 벗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골2:11). 다시 말해서 자신에게 있는 모든 이론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고후10:5). 이같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것을 내려 놓고 겸손히 청종할 수 있는 것은 진실로 우리에게 복된 일이 됩니다.

 

마태복음 13장 16절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장 2-3절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