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 2장 4절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묵상해 볼 점]

1. 위의 말씀은 바사의 왕이었던 다리오왕 시절에, 학개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당시 유다의 총독이었던 스룹바벨로부터 제사장,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2. 성경의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이 해 주시는 부분과 사람이 해야 되는 부분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말씀에서도 하나님이 해 주시는 부분은 그들과 함께 해 주시는 것이었고, 이것을 믿고 스스로 굳세게 해야 하는 몫은 스룹바벨 이하 백성들의 몫이었습니다. 이 말씀 외에도 몇가지 예를 더 들어보면,

 

(1)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의 각종 나무의 실과는 다 허락해 주셨지만, 선악과 나무만은 결코 따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사람을 그리로 이끌어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해 주신 일이지만, 그러나 그 안에서 선악과 나무를 따먹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의 몫이었습니다(창2-3장).

(2)출애굽 당시에도, 하나님께서 10가지의 재앙을 애굽에 내리실 때에, 1~9번째의 재앙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제외하고 재앙을 내리셨기 때문에, 고센 땅에 거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 것도 하는것 없이 단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것만 지켜보면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10번째 재앙인 장자를 죽이는 재앙만큼은 달랐습니다.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셨던 이전의 1~9번째 때와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셨고, 정하신 날에 양을 잡고 그 피를 각 집의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10번째의 재앙만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어야 했습니다(출7-12장).

(3)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과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큰 일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값 없이 우리에게 행해 주신 것입니다(엡2:8). 그리고 이 은혜에 대한 우리의 당연한 몫은 누구든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롬14:7-9, 갈2:20). 이것은 우리에게 댓가로써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함"과 "자원함"으로 예수님을 위하여 살고, 예수님을 위하여 죽는 우리의 몫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골로새서 3장 17절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위의 몇가지 예만 보더라도 하나님이 해 주시는 부분과 사람이 해야 되는 부분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위의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스스로 굳세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3. 지금은 “스스로” 행하려고 하는 적극적인 "믿음의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것이 우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스스로 담대해 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는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에스더 4장 13-16절 "13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15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16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사실 에스더는 이미 왕후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리 하만이 꾀를 내어 유다인들을 다 멸하려 해도 자신만은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위의 모르드개의 말 중에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고 한 대목에서, "누가 아느냐" 라는 말은 조금 애매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더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왕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유다인들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다른 여자들보다 더 아름다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모르드개가 정확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너가 왕후가 된 것은 이 때에 유다인들을 살리기 위함이었다"고 말해줬다면, 어쩌면 에스더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가 조금은 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에스더는 그것도 삼일이나 금식하고, 규례를 어겨서까지 왕을 만나겠다고 하는 놀라운 결정을 내립니다. 이같이 에스더는 스스로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믿음의 결단을 내렸고,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통해서 하만의 악한 꾀로부터 유다인들을 구원하게 해 주셨습니다.

 

만일 에스더가 믿음의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면, 모르드개의 말처럼 하나님은 다른 사람, 다른 방법을 통해서 유다인들을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유다인들을 구원하려 하셨고, 에스더는 스스로 죽고자 하므로 하나님의 도구로써 쓰임을 받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더가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스스로 하고자 하는 자신의 몫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통해서 유다인들을 구원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아래의 말씀에서 이사야 선지자도 "스스로 자원하는 심령"이 됨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사야 6장 8-9절 "8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9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와 같은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들도 믿음으로 "나를 보내소서"라고 스스로 자원하려고 할 때, 우리 또한 하나님의 도구로써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결단과 적용]

누가복음 11장 9-1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도 우리에게 우리의 몫을 다하라고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자신은 하려고 하는 마음 없이, 누군가가 해 주기만을 바라는 마음은 결코 올바른 신앙의 자세라고 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거야. 아멘! 믿습니다!"라고 말을 할 때가 있는데, 이 말이 당장에 듣기에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 고백이 정말 믿음에서 나온 고백인지, 아니면 예수님께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별을 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살펴본 대로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부분과 사람이 해야 되는 부분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데 그러한 구별없이 우리가 행해야 할 부분까지 예수님께 해달라고 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구하면 들어 주시고, 찾으면 찾게 해 주시고, 문을 두드리면 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 믿음으로 구해야 하고, 찾아야 하고, 문을 두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위의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각자 스스로가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굳세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이나 이 세상의 것들로 자신들을 굳게 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우리를 굳세게 할 수 없는데, 이는 이 세상의 것들은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의지하는 것들이 없어질 때에는 그것들을 의지한 사람들도 함께 넘어지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오직 우리는 "영원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굳세어질 수 있습니다(행20:32, 마7:24-27). 에스더는 자신의 지위나 자신에게 있는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지키려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굳센 믿음으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우리에게 주어진 몫을 다할 수 있도록, 각자가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하게 되면, 예수님께서도 그 기록된 말씀대로 반드시 우리에게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로마서 9장 27-28절 "27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28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