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장 7-10절 "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하려 하심이니라 8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묵상해 볼 점]

1. 사도 바울의 육체에는 “가시” 곧 “사단의 사자”가 있었다고 합니다(7절).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바울의 눈에 그 고통이 있었다고 하는데, 성경에서는 정확히 어디에 그 고통이 있었는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어찌되었든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병을 치료받기 위하여 세 번씩이나 예수님께 기도를 드렸지만,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9절).”

 

2. 사실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여러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많이 고치게 하셨습니다(행19:11-12). 그러나 정작 사도 바울 자신은 자기에게 있는 고통도 치료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치료를 원하는 그의 기도를 예수님께서는 세 번씩이나 들어주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통해서 어떤 깨달음을 받을 수 있을까요?

 

3. 우리는 이와 같은 바울의 경우를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다 들어주시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의 유익을 위하여 그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1-43절 "41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원대로 되기를 고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 또한 우리의 원대로 되기를 바라는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위의 말씀에서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님께 나타나 힘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원을 버리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고통을 오히려 받아드렸을 때, 그 약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이 계속 머물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10절).”

 

[결단과 적용]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의 교만을 막기 위하여 그에게 주신 육체의 가시를 통해서,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분명하게 영이 잘 되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육으로는 고통과 환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고통과 환난도 우리가 다 잘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지만(시119:71),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물론 영과 육이 모두 다 잘 될 수도 있습니다(전5: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유익한대로(필요한대로) 역사를 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육보다 영이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고린도후서 4장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자세가 영을 위해서 육을 희생할 수 있는 믿음의 자세가 된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능력을 자신에게 머물게 하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를 받아들인 이 일을 통해서, 우리는 육신이 잘 되면서 영혼이 시들고 병이 드는 것보다 차라리 육신의 약함과 환난을 통하여 영혼이 잘 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8-9절 "8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서 만족할줄 알아야 하고(딤전6:8), 혹 지금의 삶이 많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가 영을 생각하므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더욱 강해지려 한다면, 사도 바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능력(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이 말씀과 같이 우리가 복음을 믿을 때에 이 복음이 믿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고전1:18).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이 복음으로 인해서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예수의 이름 때문에 핍박과 고난을 당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우리에게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 "24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사도행전 5장 40-41절40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