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청의 중요성

 

노아 때의 홍수와 방주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반면에 노아의 방주 안팎에 칠해졌던 "역청"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에 비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노아의 방주 안팎에 칠해졌던 "역청"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역청"의 사전적 의미는, "나무 수지 또는 자연 아스팔트에서 취한 가연성 액체 탄화수소"라고 합니다. 그리고 고대에는 역청이 배와 광주리를 밀폐시키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도 창세기 11장 3절에서 당시 사람들이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려 할 때에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여"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출애굽기 2장 3절에서는 아기 모세를 갈 상자에 넣을 때 그 갈 상자에 역청과 나무 진을 칠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역청은 방수재로서 홍수 때에 물이 방주 안으로 못 들어오게 막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6장 14절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위의 말씀에서 "너를 위하여"라 하심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드는 목적과 역청을 칠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눅9:25)"라는 말씀처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 방주를 짓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배가 물 위에 뜨기 위해서는 방수재가 필수입니다. 방주를 아무리 잘 지어도 역청을 그 안팎에 바르지 않는다면 150일 동안이나 내린 비(창7:24)에 방주는 금방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렇듯 역청을 바르는 일은 방주를 만드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그 역청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세에는 다시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눅17:26-30), 그만큼 이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찰 것임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모두는 방주되신 예수님(말씀)께 들어가야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안팎에 역청을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노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사단은 우리를 이 세상의 물에 잠기게 하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5절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위의 말씀에서 여자는 성별로써의 여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신부될 우리 모두를 통칭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고후11:2). 뱀은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꾀어냈던 그 옛 뱀이며, 마귀요 사단으로서 온 천하를 꾀는 자(계12:9)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위의 말씀은, 온 천하를 꾀는 사단이 우리를 말씀(진리)에서 꾀어내어 이 세상 가운데 우리를 빠뜨리려 하고 있음을 비유로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은 더럽다(벧후2:20)고 하셨고, 세상은 다 악한 자 안에 처했다(요일5:19)고 하셨으며, 이 세상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서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도 하셨습니다(요일2:15-17).

 

요한일서 2장 15-17절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지금의 이 세상은 위의 말씀과 같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으로서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 잠겨, 이 세상에 빠져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세상과 벗된 자는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라고 하셨고(약4:4), 이제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이제는 물이 아닌 불로써 심판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벧후3:5-7). 그러므로 이 세상이 멸망할 때에 우리도 함께 멸망하지 않도록, 이제 우리는 세상과 짝할 것이 아니라 방주 속에서(예수 안에서) 역청을 발라(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의 물속에 잠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단은 우리를 말씀에서 꾀어내어 세상에 빠치려 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옛 뱀은 하와를 미혹하여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 벗어나게 했을 뿐 아니라, 그 후로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 꾀는 역사를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 "데마(딤후4:10)"와 같이 되지 않고자, 우리는 더욱더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자신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수 있으며(눅10:17-19), 더러운 세상에서 우리를 깨끗케 할 수 있으며(요일2:12, 행10:43-44, 눅24:47), 날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받게 해주시는 그리스도의 세례(행2:38, 갈2:20, 벧전3:20-21)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게(갈5:24) 해주십니다[7. 세례에 대하여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방주 안팎에 칠하게 하신 역청을 통해서 우리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역청을 삼아 우리의 안팎에 칠하라고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역청과 같이 예수의 이름을 우리의 "안과 밖에 칠하라"고 하신 것은,

 

로마서 10장 10,13절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위의 말씀과 같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라"는 것으로서, 노아의 방주가 역청을 그 안팎에 바름으로 물 위에 뜰 수 있었던 것처럼, 누구든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세상에서 구원을 얻게 되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행4:12). 만일 우리가 이같이 겉과 속이 일치 되지 못한다면, 마음으로 믿지 않고 입으로만 예수의 이름을 빙자했다가 도리어 귀신에게 수치를 당했던 과거의 일이(행19:13-16)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귀신에게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의 이름의 권세(요1:12)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게 되어지면, 그 예수의 이름이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빠지지 않게 막아 주시고(행3:16),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온전히 보전해(살전5:23) 주실 것입니다. 배에 역청이 항상 발라져 있어야 그 배가 항상 물 위에 떠서 안전할 수 있듯이,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할 때(골3:17), 그 예수의 이름이 항상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6, 11-12절 "6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11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아버지의 이름=예수의 이름[요5:43, 1. 하나님의 이름 "예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