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에 대하여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세례의 방법에는 각 교단에 따라서 크게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있습니다.

 

1)침례법: 몸을 물에 잠금.

2)관수법: 손으로 물을 떠서 머리에 부음.

3)살수법: 손가락에 물을 찍어서 뿌림.

 

특히 침례교에서는 그 교단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침례법”을 통해 세례를 주고 있으며, 요즘에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통해 받으신 방법대로 침례를 주는 교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진정 우리가 받아야 하는 것이 위에서 언급된 “물 세례”인지 함께 성경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서 진정 받고자 하셨던 혹은 받으셔야만 했던 세례가 무엇인지 성경으로 깨닫게 된다면, 우리 또한 어떤 세례를 받아야 할지가 분명하게 정해질 것입니다.

 

세례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할례”입니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남자들은 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것인데, 대대로 남자는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며,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창17:9-14). 이 율법을 좇아 예수님께서도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으셨습니다(눅2:21). 그럼에도 오늘날의 대부분의 교회들에서는 남자들에게 예수님과 같이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할례를 행하는데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교회가 대대로 지키라 하신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행하라 말씀하셨고, 예수님 또한 그 언약대로 8세에 할례를 받으셨지만, 그럼에도 예수님과 제자들을 통해 더 이상 육체의 할례가 강조되지 않았던 것은, 이제 예수님께서 할례의 수종자(롬15:8)가 되심으로 더 이상 손으로 하는 할례가 할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체의 할례를 오히려 자신의 육체의 자랑으로 삼았고, 정작 할례 받은 자로써 겸손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지는 않았습니다(갈6:11-13). 무할례자들을 업신 여기면서 반면에 자신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킨 의로운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들이 육체의 할례는 받았지만, 정작 받아야 할 마음과 귀에는 할례를 받지 못하여 그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행7:51). 이처럼 육체의 할례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혀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과, 복음을 통해서 이제 우리가 받아야 할 할례가 “그리스도의 할례(육적 몸을 벗는것; 골2:11)"임을 깨닫게 되면서, 초대 교회에서 육체의 할례를 행치 않게 된 것입니다(롬2:25-29). 그렇다고 초대 교회로부터 오늘날까지, 할례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안 지켜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으로 인해 더욱 온전하게 “영적인 그리스도의 할례”로 지킬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제 “세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강조하는 "물 세례"가 자칫 이전의 육체의 할례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우리 모두 심각하게 성경을 상고해 봐야 하겠습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할례와 마찬가지로 세례 또한 "물로 주는 세례"와 "영적인 그리스도의 세례"에 대하여 둘 다 말씀해 주셨는데, 정말 더 중요한 영적인 그리스도의 세례는 강조되지 못하고, 오히려 눈에 보여지는 육적인 물 세례가 강조되어, 교회가 “물 세례”를 주면서 성경에도 없는 "세례증"이라는 것을 발급해 주고, 그것으로 "세례 교인"이라고 인정까지 해주는 문제가 생겨나게 됐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판단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고전4:5)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교회가 어떤 사람에 대해 세례 교인이다, 세례 교인이 아니다라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서는 아무리 그 취지가 좋아도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일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이는 교회가 성경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교회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엡1:22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물로써 주는 세례는 각 교단에 따라 어떤 방법으로 행해지든지, 사실 “물 세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는 것이 우리에겐 더 중요합니다.

 

아래에 기록된 말씀들로 우리는 세례 요한의 물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가 어떻게 다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요한복음 1장 33절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사도행전 1장 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처럼 세례 요한이 물로 준 세례는 “회개의 세례(막1:4, 눅3:3, 행13:24, 행19:4)”였고,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과 불로 주는 세례"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후에 있을 예수님의 세례를 예표한 것으로써 이는 구약의 율법이 신약의 복음의 그림자(히10:1)인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의 율법은 그림자이고, 신약의 복음이 실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신약의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구약의 율법의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마11:13). 그래서 참고로, 세례 요한이 준 세례를 모세에게 속한 세례라고도 합니다(고전10:2).

 

위의 말씀에서와 같이 세례 요한이 준 “물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기 때문에 사실 죄가 하나도 없으신 예수님(요일3:5)께서는 받지 않으셔도 상관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도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신 예수님께 아래와 같이 만류하였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 13-15절 "13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14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통해 물 세례를 받으신 것은, 15절의 말씀과 같이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 즉 예수님께서 8세에 할례를 받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 육체 가운데 친히 율법을 이루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 육체 가운데 모든 율법을 이루셨기 때문에 이후로는 세례 요한의 물 세례가 아닌 예수님의 세례, 곧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받아야 할 세례가 “물 세례”가 전부라면 아래의 예수님의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가복음 10장 38-40절 "38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위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시기 전에 두명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중요한 부분은 예수님께서 두 제자들에게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질문하신 내용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두 제자에게 내가 “받은” 세례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의 “받는” 세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2: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다시 말해서 앞으로 예수님께서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고 말씀을 하신 것인데, 이것은 또 무슨 세례이겠습니까? 이 세례는 앞서 받으셨던 세례 요한의 “물 세례(침례)”와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당시 이 말씀을 들은 두 제자들은 이 세례에 대하여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세례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의 받는 세례, 곧 앞으로 받으실 세례는,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삼일만에 부활하는 세례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물 세례가 아닌 바로 이 세례를 받으려고 이 땅에 오셨고, 이 세례가 바로 “우리도 받아야 하는 영적인 세례”인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물 세례를 받으시고 정말 중요한 십자가의 세례를 받지 않으셨다면, 세례 요한에게 받은 물 세례가 예수님과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었겠습니까? 오늘날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주는 물 세례를 받고 세례증을 받기는 했는데, 아직도 내 육체의 소욕(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지 못했다면 교회에서 받은 물 세례와 세례증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이는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체의 할례는 받았는데 정작 받아야 할 마음과 귀에 받는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는 받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세례, 우리가 꼭 받아야 할 세례는 "물 세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 곧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사는 "그리스도의 세례"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위의 말씀을 보면, 사실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음에도(바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택하신 자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육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기 이전의 자신의 옛 소욕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다시 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아야 할 예수님의 세례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래 골로새서 2장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세례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를 내려 주셨습니다.

 

골로새서 2장 12절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위의 말씀과 같이 세례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알기 이전의 옛 사람(옛 소욕)이 죽어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이 세례인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거듭남(요3:1-5)”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5절 “... 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로마서 6장 1-12절 "...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11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이제 위의 말씀들로 우리가 받아야 하는 진정한 세례라는 것이, 형식과 의식을 따라받는 물 세례가 아니라 나의 옛 사람(옛 소욕)이 죽어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다시 사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물 세례”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식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의식에 참여하고도 정작 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옛 사람(옛 소욕)으로 살아간다면, 세례의 의식에는 잘 참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는 아직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래 고린도전서 1장의 말씀으로 물 세례를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증거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0-18절 "10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3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14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위의 말씀 중에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다"라는 말씀은, 이제 누구에게 속하여, 어떻게 물 세례를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 우리의 옛 사람(옛 소욕)이 죽어지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서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0장 38-40절에서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물으셨던, "나의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은, 당시 야고보와 요한에게만 해당되는 질문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질문입니다. 우리들은 과연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물 세례"가 아닙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은, 자신의 육체의 소욕에서(갈5:24), 옛 사람에게서(엡4:20-24), 그리고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요일2:15-17)에게서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다시 살려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4절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고린도후서 13장 4절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저와 함께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끝으로, 세례는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26절 말씀에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세례를 예수의 이름으로 주라고 하신 뜻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예수의 이름이 그것을 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는 크고 강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라도 예수의 이름 앞에는 다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습니다(빌2:9-10, 눅10:17-19). 이것이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의 이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각각 세 분의 이름이 아니라 오직 한 이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는 아버지의 이름도 예수(요5:43, 요17:11)고, 아들의 이름도 예수(마1:21)며, 성령의 이름 또한 예수(요14:26)이기 때문입니다[1. 하나님의 이름 "예수" 참조]. 그렇기 때문에 위의 명령을 직접 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래의 말씀들과 같이 오직 한 이름 “예수”의 이름으로만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사도행전10장 48절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사도행전 19장 5절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위의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예수님께서 명령해 주신대로 이제 모든 사람들은 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 명령을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해주신 것은,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딤전2:4). 우리 모두가 다 부활의 생명을 얻기 위하여서는, 우리 모두가 다 예수의 이름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와 같이 명령해 주신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예수님의 뜻을 우리가 올바르게 분별하여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하신 말씀처럼, 우리 또한 예수의 생명이 항상 우리 몸에 나타날 수 있도록 날마다 예수의 이름으로 죽어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의 세례이기 때문에 날마다 예수님의 세례를 받는 자들에게 항상 성령(예수의 생명)이 함께 하십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고린도후서 4장 10-11절10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