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드리는 방법

 

세상의 일들에는 그것을 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방법을 알고 그 방법대로만 행동한다면, 쉽기도 하고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결과의 확신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그 방법을 모르게 되면,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게 되기 때문에 쉬운 것도 어려울 수 있고, 만일 하는 일이 쉽게 풀리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든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기가 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방법을 좇아서 기도를 드릴 때에는 반드시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을 가질 수 있지만, 만일 우리가 그 방법을 모르게 되면, 우리의 생각과 습관을 따라 잘못된 기도를 드리게 될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그 기도에 대해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예수님과 우리와의 영적인 교통을 나누는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도의 방법]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누구에게,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셨는데, 특별히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러 나간 후), 남은 11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셨던 말씀들로 명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14장 13-16절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이 말씀으로 우리는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과 기도의 방법, 그리고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가 기도를 드린다면, “예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내게,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이 말씀은 오직 예수님의 11제자들만이 들을 수 있었고, 최후의 만찬이 벌어지고 있는 방의 바깥에 있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조상적부터 대대로 율법을 따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기도를 받으실 대상이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요한복음 14장 13-16절의 말씀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제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말씀은 11제자들에게조차도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11제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앞서 아래와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심으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께 오지 못하게 새 계명으로 정하셨다는 것을 미리 제자들에게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도 이제는 직접 여호와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도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제자들에게 덧붙여 설명해 주셨는데, 이 말씀 또한 제자들이 여호와께가 아닌 예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은,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가 되심을 제자들과 우리로 깨닫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3.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참조].

 

디모데전서 2장 5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위의 말씀에서 “중보”라 하심 또한 이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요한복음 14장 6절의 말씀과 같은 의미이며, 중보도 “한 분”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실 수 있음을 명확하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요10:1,9) 우리가 예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면, 그 구한 것을 들어주실 때도 “예수의 이름으로” 들어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보의 역할이요, 새로운 기도의 질서입니다.

 

요한복음16장 23-25절23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25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위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이때까지는 예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때가 되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라"고 새로운 기도의 방법에 대해서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사도들의 행적이 기록된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행하는 모든 일들마다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이 모든 일에 다 예수의 이름을 사용(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내게 내 이름으로 구해야 응답 받을 수 있다는 비사(비유, 비밀)의 말씀을 그들이 듣고 순종한 결과인 것입니다. 이제 오늘날의 우리 또한 이 새로운 기도의 방법을 따라서 예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요14:14-15). 왜냐하면 이제 그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중보를 인정해 드리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이 방법을 따르지 않으면 그의 기도는 응답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이 방법대로 행치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라고 조건문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신 후부터는 아무리 제자라도 예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은 기도에는 결코 응답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방법을 알지 못했을 때는 따르지 않아도 되었으나, 이 방법을 안 뒤부터는 우리도 순종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요15:21-22, 행17:30).

 

[기도의 내용]

 

기도의 방법은 예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아래의 야고보서 4장 2-3절 말씀에서 먼저 우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 다음으로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내용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알려주신 방법대로 기도를 드렸다 해도 기도의 내용이 잘못 되었다면 이 또한 들어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분별력 없는 어린 아이가 자신을 해칠 수 있는 물건임에도 그것을 알지 못하여 부모에게 그것을 갖게 해달라고 조른다면 그의 부모는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의 부탁이라도 그 아이를 위해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욕심을 따라 구하는 기도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중심적인 기도, 곧 말씀을 따라 구하지 않는 기도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들어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2...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마태복음 6장 7-8절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기도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와 같은 “자기 중심적인 기도”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31-33절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가복음 14장 36절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이처럼 아무리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어도 그것을 참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드릴 때 그 기도가 응답받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란,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주기도문(마6:9-13)과 같이, 그리고 지혜를 구한 솔로몬의 기도(왕상3장)와 같이 “말씀으로 드려지는 기도”를 말합니다. 성경의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그 뜻을 깨닫고, 그 말씀을 이루고자 “예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린다면, 솔로몬의 경우와 같이 우리가 구하지 아니한 다른 것까지라도 우리에게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결국, 기도도 성경을 알아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왕상3:10), 곧 열납하시는 기도(시19:14)를 드릴 수 있게 됨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그것이 아무리 사도 바울의 기도라도 예수님께서는 그의 유익을 위해 들어주시지 않으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눈에 있는 고통으로 인하여 세번씩이나 그것을 없애달라고 예수님께 기도를 드렸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10절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

 

우리는 이 말씀으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언제든 우리는 예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릴 수 있지만,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안 들어주시고는 예수님의 판단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우리의 유익만을 생각해 주시는 분(히12:9-10)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잠30:8)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번씩이나 자신이 한 기도에 대해 예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았을 때, 낙심하거나 마음이 완악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뜻을 헤아려 도리어 크게 기뻐하고 자랑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어린 아이와 같이 우리의 것만을 주장할게 아니라, 예수님의 넓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오직 우리의 유익만을 위하시는(히12:10) 예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